2008년 07월 11일
유니콘스의 영웅 정민태의 은퇴 선언
올 시즌, 우리 히어로즈의 연봉 후려치기 과정에서의
일종의 본보기로 웨이버 공시가 되었다가 기아로 팀을
옮겼던 정민태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래저래 말도 많았고 안 좋은 일들도 있어 상당히 폄하되는
선수인 이 정민태는 (태평양... 때까지 포함시키긴 조금 그렇고)
현대 유니콘스의 레전드이자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대단한
투수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투수가 은퇴식도 없이 쓸쓸히 은퇴하는 것이 안타까워
정민태에 대한 포스팅을 남깁니다.

정민태 선수에 대한 저의 첫 기억은...
아마도 어느 해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잡지(아마도 소년중앙이 아니면 보물섬)에
얼굴이 통통한 야구 선수의 인터뷰가 실렸었습니다. 주목을 받으며
프로 구단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뛰지 못한 선수의...
"올해는 건강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대충 이런 내용의 인터뷰와 웃는 얼굴의 사진이 포함된 기사였던 것만은
기억이 나네요.
그 선수가 바로 정민태 선수입니다. 정민태 선수의 기록을 보면, 92년이
아니면 93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방어율 3.48, 124승 96패 3세이브, 완투 42번, 완봉 9번
이고 그 중 현대에서 거둔 기록은
107승 3세이브, 완투 29번에 완봉 6번입니다.
* 완투 : 투수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에서 계속 투구를 한 것을 의미.
* 완봉 : 완투의 하위 계념으로 경기 끝날 때까지 투구를 하며 무실점을 기록한 것을 의미.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정민태 선수의 화려한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도,
전성기도 현대 유니콘스 시절이었습니다.
때문에... 정민태 선수는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캡틴 이숭용 선수와 투수 전준호 선수와 함께 현대 유니콘스와 한 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몇달 전의 이숭용 선수의 인터뷰 기사 중의 한 구절을 보면...
"구단주(고 정몽헌 회장)가 회식에 오셔서 선수들에게 거리낌없이 "오늘 삼진 먹은 선수는
밥먹지 마. 삼진이나 먹으면서 뭔 밥을 먹냐"고 농담을 하실 정도였다. 현대에선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회사가크게 어려워져 대부분의 스포츠단을 정리하면서도
유니콘스는 건들지 않으셨다. 우리만 처리하면 다른 종목은 살릴 수 있었는데도...
이숭용 "현대 유니콘스는 내 인생의 모든 것" by 이데일리
이 정도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정몽헌 구단주는 우리나라 야구판에서
이만큼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있던 모기업 고위층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물론 현대 유니콘스의 첫
에이스였던 정민태 선수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했었구요.

정민태가 어떤 투수였는지에 관한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정민태,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나 by OSEN
이 기사의 소제목들만 붙여넣기 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다승왕·골든글러브 3회 수상
▲ 마지막 토종 20승 투수
▲ 5시즌 연속 200이닝 투구
▲ 세계 최다 선발 21연승
▲ 한국시리즈 우승 4회
소제목만 봐도 범상한 투수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네요.
기사를 보시면 알 수 있는 부분들을 제외하고 좀 더 적어보면,
정민태 선수가 다승왕을 차지했던 해는 1999년, 2000년, 2003년 인데요.
이 해들은 정민태 선수 개인적으로, 또 팀과 야구계에 있어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해 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잠시 적어봅니다.
- 1999년
1999년은 정민태 선수가 커리어 중 딱 한 번 20승을 달성했던 해입니다.
이 해 20승을 거두면서 정민태 선수는 20세기의 마지막 20승 투수와,
가장 최근에 20승을 달성한 국내 선수가 되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부분과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때에는 팀의 투수진이 무너졌기 때문에 선발투수로만 출장한 것이 아니라
마무리로도 등판하곤 했습니다. 정민태의 프로 통산 처음이자 마지막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승 중에는 1승의 구원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록한 2.54의 방어율과 20승이 더더욱 대단한 것은, 이 해가
리그 전체적인 분위기가 투수들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타자들이 불방망이를
뽐내는 엄청난 타고투저의 해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시면 되곘네요.
이와 반대로 199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심한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최약체 쌍방울을 제외하고 모두 세 자리수 팀 홈런을 올렸고 3할 타자는 무려 20명이었다.
20세기 마지막 20승' 정민태를 추억하며 by 마이데일리
- 2000년

2000년은 현대 유니콘스라는 팀에게 있어서, 그리고 정민태 본인에게
있어서 아주 많은 의미와 일이 있었던 해입니다.
2000년의 현대 유니콘스는 91승 2무 40패, 승률 0.695 로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던 리그 역사에 남을만한 강팀입니다.
물론, 역대 최강의 팀이라 하기는 좀 부족하지만, 역대 최강 팀을
꼽을 때 후보로 올라가기에 부족함은 없는 그런 압도적인 강팀이었습니다.
여담으로... 검색 좀 하면서 기록을 찾아보고 고른, 제 개인적으로 꼽는
역대 최고의 강팀은 1993년의 해태 타이거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나가던 때의 선동렬과 이종범이 같이 뛰었던 팀이니까요-_-
2000년 현대 유니콘스 팀의 면면을 좀 더 살펴보면...
일단 타자들의 활약도 훌륭했습니다.,
외야에는 3할 30홈런 30도루의 박재홍이 있었고,
내야에는...
3루에는 정성훈이 오기 전까지는 항상 구멍이었던 곳을
훌륭하게 맡아준 수비 좋고 타율은 높지 않지만 한방이 있는 뜬금포 용병
퀸란이 있었고,
2루에는 3할 4푼의 엄청난 타율을 찍어주던 수비 좋은 2루수 박종호가,
(올 시즌 끝나고 꼭 어디론가 가셔서 선수 생활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유격수에는 국내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국대 유격수 박진만이
2할 8푼을 찍어주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이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최대 강점은 마운드였는데요.
당시 유니콘스의 1,2,3 선발이던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 선수가 각각
선발 18승을 거뒀던 해 입니다. 1~3선발이 소화한 이닝이 597 1/3이닝이고,
이들이 54승을 합작... 이런 팀의 성적이 나쁘기가 더 힘들죠 사실-_-
요즘 한창 잘나가고 있는 마일영 선수가 데뷔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병역 파동으로 군대에 갔다 와 아직 재기를 노리고 있는 언더 투수 박장희,
아직도 팀에서 굳은 일을 담당하는 마당쇠 투수 전준호, 이 해를 끝으로
은퇴한 태평양 돌핀스의 레전드 정명원 코치님도 활약했던,
신구의 조화가 훌륭했던 해입니다.
이 선수들의 2000년 성적을 가져와보면...
마일영 방어율 3.38, 5승 2세이브 4홀드 93 1/3이닝
박장희 방어율 3.90 9승 99 1/3이닝
전준호 방어율 3.54 1세이브 1홀드 48 1/3이닝
정명원 방어율 3.98 5승 61이닝
이 정도입니다.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신인(마일영*이 붙박이 선발로 뛸 수
없었던 점을 봐도 이 해의 현대 유니콘스 마운드의 탄탄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한 후,
한국시리즈에서 4승 3패로 우승을 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 한국시리즈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던 시리즈였는데요.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는 든든한 선발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의 활약으로 1~3차전을 잡으며 손쉽게 우승을 하나...
했었는데, 두산이 4~6차전을 따라잡으며 양 팀은 각각 3승 3패가
되었었고, 우승팀이 갈리는 마지막 7차전에서 현대의 선발 김수경의 호투와
두 개의 홈런을 몰아친 퀸란의 맹활약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퀸란은 7차전 활약을 포함해서 타율 3할4푼6리에 홈런 3개,
10타점의 맹활약으로 외국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좋은 일만 있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결과론이지만) 이종욱을 방출했던 대삽질-_-과 함께 현대 유니콘스의
최대 삽질로 평가받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던 해가 바로 이
2000년입니다OTL
또한, 정민태 선수가 일본으로 진출했던 해 또한 이 2000년입니다.
올해 초, 정민태 선수가 팀을 떠나게 하는데 아주 큰 공을 세웠던
야구인 박노준이 SBS 해설위원 당시 이런 말을 헀었지요.
“아마 때부터 제2의 선동열이라 불리던 투수다. 데뷔 때 부상만 없고, 일본 진출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첫 200승은 송진우가 아니라 정민태의 몫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저씨에게 유니콘스 팬인 제가 좋은 감정이 있을리가 없으니...
아... 그러셨쎄요?-_-
라고 하고 싶지만 저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허황된 말이 아닐 정도로, 정민태의
실력은 굉장했습니다. 2001~2002년만 날리지 않았더라면, 200승은 아니더라도
통산 150승은 넘기고 은퇴할 수 있었을 거라고 감히 예상해 보네요.
정민태 선수가 많은 안티를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 진출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이기도 했고...
역사에 만약은 없는 거라지만... 이 2000년은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했던 해이기도,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이기도 합니다.
만약 정민태 선수가 끝까지 한국에 남았더라면...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를 고수했더라면...
지금의 팀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민태의 일본 진출과, 일본에서의 생활에 관해서는 아래의 인터뷰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정민태, "인천이 그립다" by sports 2.0
- 2003년

정민태 선수가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해입니다.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정민태가 과연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팀 내외적으로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정민태는 17승을 올리며
멋지게 재기해 냅니다.
이 해에는 고 정몽헌 구단주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현대 유니콘스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대아산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야구단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해 주시던 구단주의 죽음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운명은
이때 완전히 결정이 되어버렸다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해 정민태 선수의 활약의 백미는 한국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우승 때와 마찬가지로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경기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4승 3패로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했던 2003년.
정민태는 1차전, 4차전, 7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2003년 한국시리즈 성적은 3승 방어율은 1.69를 기록했고,
마지막 7차전은 완봉 승으로 우승을 자축했습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는 등판하지 못한 정민태는
한국시리즈 최다연승(6회)과 통산 최다 투구이닝(73⅔)를 기록했으며,
한국시리즈 통산 승리는 6승으로 7승의 김정수(전 해태)에 이어 2위입니다.
작년 팀 창단 최초로 SK가 우승을 했습니다만, 아마 정민태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첫 우승은 2003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 2003년
한국시리즈는 정민태의 독무대였습니다. 당연히 시즌 MVP는 정민태가
차지.
한국시리즈 우승 후 김재박 감독이나 정민태 선수 모두 우승 트로피를
고 정몽헌 구단주에게 바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게 기억나네요.
일종의 본보기로 웨이버 공시가 되었다가 기아로 팀을
옮겼던 정민태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래저래 말도 많았고 안 좋은 일들도 있어 상당히 폄하되는
선수인 이 정민태는 (태평양... 때까지 포함시키긴 조금 그렇고)
현대 유니콘스의 레전드이자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대단한
투수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투수가 은퇴식도 없이 쓸쓸히 은퇴하는 것이 안타까워
정민태에 대한 포스팅을 남깁니다.

정민태 선수에 대한 저의 첫 기억은...
아마도 어느 해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잡지(아마도 소년중앙이 아니면 보물섬)에
얼굴이 통통한 야구 선수의 인터뷰가 실렸었습니다. 주목을 받으며
프로 구단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뛰지 못한 선수의...
"올해는 건강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대충 이런 내용의 인터뷰와 웃는 얼굴의 사진이 포함된 기사였던 것만은
기억이 나네요.
그 선수가 바로 정민태 선수입니다. 정민태 선수의 기록을 보면, 92년이
아니면 93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방어율 3.48, 124승 96패 3세이브, 완투 42번, 완봉 9번
이고 그 중 현대에서 거둔 기록은
107승 3세이브, 완투 29번에 완봉 6번입니다.
* 완투 : 투수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에서 계속 투구를 한 것을 의미.
* 완봉 : 완투의 하위 계념으로 경기 끝날 때까지 투구를 하며 무실점을 기록한 것을 의미.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정민태 선수의 화려한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도,
전성기도 현대 유니콘스 시절이었습니다.
때문에... 정민태 선수는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캡틴 이숭용 선수와 투수 전준호 선수와 함께 현대 유니콘스와 한 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몇달 전의 이숭용 선수의 인터뷰 기사 중의 한 구절을 보면...
"구단주(고 정몽헌 회장)가 회식에 오셔서 선수들에게 거리낌없이 "오늘 삼진 먹은 선수는
밥먹지 마. 삼진이나 먹으면서 뭔 밥을 먹냐"고 농담을 하실 정도였다. 현대에선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회사가크게 어려워져 대부분의 스포츠단을 정리하면서도
유니콘스는 건들지 않으셨다. 우리만 처리하면 다른 종목은 살릴 수 있었는데도...
이숭용 "현대 유니콘스는 내 인생의 모든 것" by 이데일리
이 정도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정몽헌 구단주는 우리나라 야구판에서
이만큼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있던 모기업 고위층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물론 현대 유니콘스의 첫
에이스였던 정민태 선수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했었구요.

정민태가 어떤 투수였는지에 관한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정민태,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나 by OSEN
이 기사의 소제목들만 붙여넣기 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다승왕·골든글러브 3회 수상
▲ 마지막 토종 20승 투수
▲ 5시즌 연속 200이닝 투구
▲ 세계 최다 선발 21연승
▲ 한국시리즈 우승 4회
소제목만 봐도 범상한 투수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네요.
기사를 보시면 알 수 있는 부분들을 제외하고 좀 더 적어보면,
정민태 선수가 다승왕을 차지했던 해는 1999년, 2000년, 2003년 인데요.
이 해들은 정민태 선수 개인적으로, 또 팀과 야구계에 있어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해 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잠시 적어봅니다.
- 1999년
1999년은 정민태 선수가 커리어 중 딱 한 번 20승을 달성했던 해입니다.
이 해 20승을 거두면서 정민태 선수는 20세기의 마지막 20승 투수와,
가장 최근에 20승을 달성한 국내 선수가 되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부분과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때에는 팀의 투수진이 무너졌기 때문에 선발투수로만 출장한 것이 아니라
마무리로도 등판하곤 했습니다. 정민태의 프로 통산 처음이자 마지막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승 중에는 1승의 구원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록한 2.54의 방어율과 20승이 더더욱 대단한 것은, 이 해가
리그 전체적인 분위기가 투수들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타자들이 불방망이를
뽐내는 엄청난 타고투저의 해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시면 되곘네요.
이와 반대로 199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심한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최약체 쌍방울을 제외하고 모두 세 자리수 팀 홈런을 올렸고 3할 타자는 무려 20명이었다.
20세기 마지막 20승' 정민태를 추억하며 by 마이데일리
- 2000년

2000년은 현대 유니콘스라는 팀에게 있어서, 그리고 정민태 본인에게
있어서 아주 많은 의미와 일이 있었던 해입니다.
2000년의 현대 유니콘스는 91승 2무 40패, 승률 0.695 로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던 리그 역사에 남을만한 강팀입니다.
물론, 역대 최강의 팀이라 하기는 좀 부족하지만, 역대 최강 팀을
꼽을 때 후보로 올라가기에 부족함은 없는 그런 압도적인 강팀이었습니다.
여담으로... 검색 좀 하면서 기록을 찾아보고 고른, 제 개인적으로 꼽는
역대 최고의 강팀은 1993년의 해태 타이거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나가던 때의 선동렬과 이종범이 같이 뛰었던 팀이니까요-_-
2000년 현대 유니콘스 팀의 면면을 좀 더 살펴보면...
일단 타자들의 활약도 훌륭했습니다.,
외야에는 3할 30홈런 30도루의 박재홍이 있었고,
내야에는...
3루에는 정성훈이 오기 전까지는 항상 구멍이었던 곳을
훌륭하게 맡아준 수비 좋고 타율은 높지 않지만 한방이 있는 뜬금포 용병
퀸란이 있었고,
2루에는 3할 4푼의 엄청난 타율을 찍어주던 수비 좋은 2루수 박종호가,
(올 시즌 끝나고 꼭 어디론가 가셔서 선수 생활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유격수에는 국내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국대 유격수 박진만이
2할 8푼을 찍어주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이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최대 강점은 마운드였는데요.
당시 유니콘스의 1,2,3 선발이던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 선수가 각각
선발 18승을 거뒀던 해 입니다. 1~3선발이 소화한 이닝이 597 1/3이닝이고,
이들이 54승을 합작... 이런 팀의 성적이 나쁘기가 더 힘들죠 사실-_-
요즘 한창 잘나가고 있는 마일영 선수가 데뷔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병역 파동으로 군대에 갔다 와 아직 재기를 노리고 있는 언더 투수 박장희,
아직도 팀에서 굳은 일을 담당하는 마당쇠 투수 전준호, 이 해를 끝으로
은퇴한 태평양 돌핀스의 레전드 정명원 코치님도 활약했던,
신구의 조화가 훌륭했던 해입니다.
이 선수들의 2000년 성적을 가져와보면...
마일영 방어율 3.38, 5승 2세이브 4홀드 93 1/3이닝
박장희 방어율 3.90 9승 99 1/3이닝
전준호 방어율 3.54 1세이브 1홀드 48 1/3이닝
정명원 방어율 3.98 5승 61이닝
이 정도입니다.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신인(마일영*이 붙박이 선발로 뛸 수
없었던 점을 봐도 이 해의 현대 유니콘스 마운드의 탄탄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한 후,
한국시리즈에서 4승 3패로 우승을 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 한국시리즈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던 시리즈였는데요.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는 든든한 선발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의 활약으로 1~3차전을 잡으며 손쉽게 우승을 하나...
했었는데, 두산이 4~6차전을 따라잡으며 양 팀은 각각 3승 3패가
되었었고, 우승팀이 갈리는 마지막 7차전에서 현대의 선발 김수경의 호투와
두 개의 홈런을 몰아친 퀸란의 맹활약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퀸란은 7차전 활약을 포함해서 타율 3할4푼6리에 홈런 3개,
10타점의 맹활약으로 외국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좋은 일만 있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결과론이지만) 이종욱을 방출했던 대삽질-_-과 함께 현대 유니콘스의
최대 삽질로 평가받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던 해가 바로 이
2000년입니다OTL
또한, 정민태 선수가 일본으로 진출했던 해 또한 이 2000년입니다.
올해 초, 정민태 선수가 팀을 떠나게 하는데 아주 큰 공을 세웠던
야구인 박노준이 SBS 해설위원 당시 이런 말을 헀었지요.
“아마 때부터 제2의 선동열이라 불리던 투수다. 데뷔 때 부상만 없고, 일본 진출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첫 200승은 송진우가 아니라 정민태의 몫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저씨에게 유니콘스 팬인 제가 좋은 감정이 있을리가 없으니...
아... 그러셨쎄요?-_-
라고 하고 싶지만 저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허황된 말이 아닐 정도로, 정민태의
실력은 굉장했습니다. 2001~2002년만 날리지 않았더라면, 200승은 아니더라도
통산 150승은 넘기고 은퇴할 수 있었을 거라고 감히 예상해 보네요.
정민태 선수가 많은 안티를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 진출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이기도 했고...
역사에 만약은 없는 거라지만... 이 2000년은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했던 해이기도,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이기도 합니다.
만약 정민태 선수가 끝까지 한국에 남았더라면...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를 고수했더라면...
지금의 팀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민태의 일본 진출과, 일본에서의 생활에 관해서는 아래의 인터뷰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정민태, "인천이 그립다" by sports 2.0
- 2003년

정민태 선수가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해입니다.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정민태가 과연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팀 내외적으로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정민태는 17승을 올리며
멋지게 재기해 냅니다.
이 해에는 고 정몽헌 구단주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현대 유니콘스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대아산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야구단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해 주시던 구단주의 죽음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운명은
이때 완전히 결정이 되어버렸다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해 정민태 선수의 활약의 백미는 한국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우승 때와 마찬가지로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경기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4승 3패로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했던 2003년.
정민태는 1차전, 4차전, 7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2003년 한국시리즈 성적은 3승 방어율은 1.69를 기록했고,
마지막 7차전은 완봉 승으로 우승을 자축했습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는 등판하지 못한 정민태는
한국시리즈 최다연승(6회)과 통산 최다 투구이닝(73⅔)를 기록했으며,
한국시리즈 통산 승리는 6승으로 7승의 김정수(전 해태)에 이어 2위입니다.
작년 팀 창단 최초로 SK가 우승을 했습니다만, 아마 정민태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첫 우승은 2003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 2003년
한국시리즈는 정민태의 독무대였습니다. 당연히 시즌 MVP는 정민태가
차지.
한국시리즈 우승 후 김재박 감독이나 정민태 선수 모두 우승 트로피를
고 정몽헌 구단주에게 바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게 기억나네요.
# by | 2008/07/11 18:00 | 스포츠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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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앞길막기 싫어서 엿다느데, 2군에서 다시 살아낫으면 1군 와볼만도 햇을건데, 왜 은퇴를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1군와서 잘던졋으면 시즌 끗나고 은퇴해도 모양새도 좋고, 은퇴식도 나름 햇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저도 생각같아선 마지막으로 1군에서 뛰는 모습 보여주시고 은퇴했으면
좋겠는데요.
그리고 정말 대단한 선수인데...
이렇게 조용히 은퇴한다는게 참...슬픕니다.
저평가 되어 있는 슬픈 영웅의 은퇴 후우...
적어도 은퇴식도 없을 정도의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ㄱ-
기아에서 임의탈퇴로 묶어서 그 방법도 불가능하고
혹자는 올스타전에서 후배들의 주최로 은퇴식 하는건 어떻냐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들어서 왜 이러다가 이런모양으로 은퇴했는지
히어로즈에서 코치직 제안할때도 아니라고 더 뛰고싶다고 그래서 구단과 마찰이 생긴건데
진짜 계기가 뭔지 궁금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민태 선수의 은퇴는 어깨의 통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부위도 아닌 어깨를 수술했던 노장 선수이니만큼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선수 본인이 더 잘 알았을 테구요.
올해 초 정민태 선수의 관련 기사에서는 만일 올해도 안 된다면 구단에서
더 하라고 해도 유니폼을 벗을 거라는 부분이 있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배수진을 쳐놓고 재기를 노렸기 때문에, 팀을 나가기 전의 이광환 감독의
평가나 팀을 옮긴 후의 정민태 선수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았을만큼
재기에 대한 자신감과 가능성이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깨의 통증이 다시 생겼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즌 중에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힘든 수술과 재활 과정을 이겨내고 멋지게 복귀한 이대진 선수
처럼 끝까지 노력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이대진 선수가 그만큼 대단하고 멋지다는 거지 재기를 해내지 못했다고
욕을 먹어야 한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겠고...ㄱ-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네요...ㄱ-
올해도 재기 못하면 은퇴한다는 정민태 선수의 기사는 아래의 주소에 있습니다.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0801/sp200801032220395738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