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천주교 신자로, 세례성사를 받고 베드로라는 세례명도 가진
적이 있었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성당을 나가지 않던 '냉담자'입니다.

나름 촛불 집회에 공감하고는 있었지만, 이래저래 집회에 한번도
참석 못하다가, 신부님들까지 나서신다는데 안 갈 수는 없겠다 싶어
어제 처음으로 시청에 다녀왔습니다.



미사는 원래 6시 예정이었습니다만, 약간 늦게 출발한 관계로

일단 시청역에 도착...
했지만 구제불능 방향치인 저는 언제나처럼 엉뚱한 출구로 나가
길을 헤매다 아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길을 물어보고 나서야 시청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시청 광장에 도착해서 막 광장으로 들어가는데... 제가 방금 나온
시청역 5번 출구 쪽이 시끌시끌합니다. 사람들의 구호 소리도
들리구요. 그때는 잘 몰라서 조금 보다 말았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알아보니 시청역 5번 출구를 경찰이 봉쇄했고, 그에 항의하던 시민
분을 연행했던 모양이네요. 연행됐었던 시민 분들은 스님들과 시민들의
항의로 풀려나셨다고 합니다. 

제가 방금 전에 지나왔던 곳을 갑자기 봉쇄를 하고 연행을
해갔다... 제가 연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네요. 지금 생각하니
참 오싹합니다. 어이도 없고. 미사 참석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은 왜 막겠다는 건지...


사실, 같이 갈 사람도 없고 해서 혼자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파울볼이라는 야구 사이트에서 가신다는 분을 발견해서, 시청에
도착하여 연락을 드리고 그쪽으로 합류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총 세 명이서 오늘 미사와 행진에 참가했네요.


미사다 보니 교우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여성 교우 분들이 머리에
쓰시는 미사포도 오랫만에 많이 봤구요. 오랫만에 천주교의 느낌을
느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음향차 진입을 경찰이 한동안 막아 미사는 7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입장... 정말 많이 오셨습니다. 두세줄로 천천히 걸어오시는데,
그 줄이 한동안 계속 이어질 정도로...




한 두어 분 스님도 같이 입장하셨습니다-_-b 천주교와 불교가 사이 좋은 것은
뭐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네요.



신부님들이 모두 입장하시고 나서,
"많이 외로우셨죠? 그래서 저희가 위로해 드리러 왔습니다" 라는
말로 미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에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이상하게도 즐겁고 기뻤습니다. 이런 일에 신부님들이
나서주신 감사함도 있을테고, 신부님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말씀들을
오랫만에 들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미사는 즐겁게 진행됐습니다. 신부님의 위트 넘치시는 농담에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구요. '비폭력' 을 관철해야 한다는 소신도
확실히 밝히셨습니다.

교우 분들도 워낙 많이들 오시다 보니 영성체 모시는 데에도 30분 이상이
걸리다 보니... 그 동안 (좀 자리가 멀어서 성함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가수 분이 노래를 부르시며 흥을 돋궈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미사가 끝나갈 때 쯤 신부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오늘 가두 행진은 청와대로 향하지 않고, 이 근처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의경들은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는데, 집회에 참가한 분들은 그 쪽으로 안 가니 뭐... 그들이 말하는 명분
이라는 것이 생길 일도 없었습니다. 저는 청와대로 자꾸 가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오늘 신부님들의 이 결정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근처 도로의 절반 가량을 촛불을 들고 걸으며 구호를 외쳤습니다.
여기서 참 재미있었던 게, '시민들도! 함께 해요!' 를 외치던 와중에,
길을 건너 오시는 집회 참가자 분들 떄문에 잠시 멈춰선 경동 택배 차량을
본 참가자 분들. '경동 택배! 함께 해요!' 를 외치십니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시던
운전자 분이 웃으면서 손을 들어주시자 환호성이 터집니다. 뭐랄까... 굉장히
유쾌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차를 기다리시던 분들이 박수도 많이 쳐 주셨구요.
역시 이런 분위기의 촛불 집회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 시청 광장으로 돌아오고 나니, 어떤 구심점이 없습니다.
신부님들의 천막으로 향하는 분들도 계시고, 돗자리를 깔고 쉬시는
분들도 계시고, MT 온 것처럼 게임을 하거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일행 분들과 잠시 자리를 벗어나 포장마차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층 더 평화롭고 느긋한 분위기이고 해서 그대로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가다가, 잠시 신부님들의 천막에 들렀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 때까지 신부님들께서는 곡기를 끊는다고(단식을 하신다고)
하네요. 금방 끝내실 것 같지 않아서 사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오늘 첫 참가라서 어제나, 그 이전의 집회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오늘은 연인 분들이나 여성 분들끼리 오신 분들,
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참가자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얼핏 보면
이거 여성 분들이 더 많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좀 더 덧붙이면, 생각보다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신부님들이 오늘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 '비폭력'은 앞으로도
계속 관철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여지껏 다치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서라도요.

오늘처럼만 집회가 계속되면 참 좋겠는데요. 쉽지는 않겠지만...
하여튼, 오늘 미사에 참가하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스님들, 참가자 분들, 그리고 한참을 서 있던
전경들까지 모두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ps : 모처럼의 미사는 정말 여러모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10년 째 냉담자의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은 움직일만큼...^^;

ps2 : 사실 가능하면 우울한 이야기는 피하고 즐거운 얘기만 올리는
        공간으로 쓰고 싶어서, 요즘의 시국에 대한 포스팅은 피했었는데요.
        오늘의 미사는 적어도 저에겐 정말로 기쁘고 즐거웠기 때문에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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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day28 | 2008/07/01 03:02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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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비앙카 at 2008/07/01 11:22
저는 못갔는데 아주 좋은 미사였네요...
아주 좋은 글읽고 가는 느낌이예요~ 블루데이님에 마음을 느낄수 있었던거 같네요
Commented by blueday28 at 2008/07/01 15:37
예. 종교를 떠나 한번쯤 참석해볼만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미사였습니다^^ 비앙카님도 참석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Commented by 비앙카 at 2008/07/02 20:44
그러게요~ =ㅁ=;; 항상 미사에 참석하러 가기 귀찮지만 갔다오면 잘했다라고 생각합니다. =ㅁ=;;; 불량신자 ㅋㅋ
Commented by blueday28 at 2008/07/02 23:22
집에서 10분 거리 이내에 성당이 있는데도
10년만에 미사 드린 저같은 사람도 있는데요 뭐ㄱ-
비앙카님은 저에 비하면 열혈신자시죠ㅎㅎㅎ

그리고... 저도 예전에 성당 꾸준히 다닐 때, 가기 전이면 항상
귀찮아서 뒹굴거리다가도, 다녀오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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